'기술금융' 키우려다 '독버섯' 키운다?
울며 겨자먹기식 기술금융 확대…건전성 중심 추세에 역행
박근혜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기술금융 정책에 금융권에는 냉기가 돌고 있다. 추석 이후에는 더욱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에 금융권은 잔뜩 어깨가 움츠러든 상황이다.
우선 금융당국은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는 인센티브를 몰아주는 등 과감한 혜택을 내세워 은행의 기술금융 확대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기술금융은 담보나 보증이 아닌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평가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보신주의’를 질타한 이후 본격적으로 드라이브가 걸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4일에도 기술금융 추진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금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에너지 신산업 토론회’에 참석해 “기술금융도 도와주고 정보도 제공해서 민간이 기술을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이날 금융협회장들과 만나 “금융산업 전반에 만연한 보신주의가 금융업 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질타하며 담보 위주 대출에서 벗어나 기술금융을 통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라고 요구했다.
은행들은 신 위원장의 “기술금융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아웃”(8월 27일 기술금융 현장간담회)이라는 발언 이후 기술금융에 대한 당국의 조치가 구체화된 상황에서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금융당국의 제재’가 반복되면서 금융권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은행권에 적극적인 기술금융을 독려하면서 지나친 몰아치기식 행정을 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기술금융을 할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관치 논란도 함께 달아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강제적으로 할당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기술금융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주어지는 방안을 두고 은행권은 “할당제와 다를 바 없다”고 읍소하고 있다.
은행권은 기술금융을 일으켜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은행의 건전성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건전성 확보가 최우선인 은행권의 저항에 기술금융이 제 속도를 못 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금융권은 지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서 아무리 하라고 부추기고, (기술금융에 따른 부실) 제재를 안 한다고 해도 제 발등을 찍을 대출을 누가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지난정부때 추진하다 없어진 녹색금융처럼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은행권은 위험투자 성격이 강한 기술금융에 자본시장이 아닌 은행의 자금이 투입되는 게 경제구조상 바람직하냐는 데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기술금융 확대가 건전성 악화의 눈덩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술만 보고 대출하라는 것은 은행에게 도박판에 배팅하라는 요구와 같다”며 “1억원의 부실이 생기면 이를 메우기 위해 100억의 영업노력을 해야하는 게 은행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안전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예대마진 위주의 안정적인 수익에만 의존해온 관행으로 보신금융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그렇다고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금융을 대폭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무엇보다 정책 추진에 앞서 기술형 중소기업을 평가할 인력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게 필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권에서는 ‘누적된 자료’, ‘은행 내부 전문가 양성’, ‘기술평가 신뢰도’ 등을 풀어야할 과제로 꼽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객관적인 기술평가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은행이 이를 신뢰하지 않거나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라 소통하면서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관련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형식적인 지원체계를 설계하게 되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고, 같은 기관 구정한 연구위원은 “기술금융 발전은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영입과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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