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칼날' 금융당국, 감사원증후군 '전전긍긍'
감사원, 카드사 정보유출 원인 금융당국의 부실한 감독과 업무태만 결론
고객정보 이관(국민은행→국민카드) 놓고 금감원-금융위 상반된 유권해석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금융권 제재조치 결정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사상 최대 징계조치를 앞두고 있는 금융당국으로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금융당국의 업무태만으로 결론 지으면서 금융 제도와 관리감독을 소홀했던 금융당국을 향한 비난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식의 불만도 나왔다. 금융회사에게 제재수위를 높여 당국의 잘못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특히,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동반 중징계 사전조치로 인해 징계수위 결정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과 금융당국간의 '파워게임'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의 허물을 임 회장에 전가시키는 것은 무리수라는 감사원의 입장과 달리 금융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위법사항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간 유권해석의 차이다. 감사원은 금융지주회사법을, 금융당국은 신용정보법을 내세우며 '간섭'과 '권한'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감사원의 수감기관인 금융당국은 속앓이다. 상급기관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맞설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그렇다고 금융권의 포청천 노릇을 해야 하는 기관으로서 결정을 번복할 경우 구겨진 체면을 만회할 수 없다. 앞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감사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자율과 독립성에 생채기가 날 수 있다.
금융당국의 제재심의 결정이 장기화될수록 다양한 변수가 속출했다. 감사원 뿐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예측이 가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4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금융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보신주의를 질타하면서 감독체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평가체제, 감독체제가 잘못되면 일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면서 "지금 창조경제 시대에 맞게 평가체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예로 들었지만 금융당국이 다그칠수록 이들의 보신주의는 더욱 깊게 패어들수 밖에 없다. 금융권과 당국간의 엇박자 행진은 불보듯 뻔하다.
이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금의 말씀을 뼈아픈 반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했다. 사실 박 대통령이 이같은 발언을 했는지 금융권에서도 해석은 분분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을 좀더 다그치라는 것인지 당국의 관리감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금융당국의 감독체계의 개혁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라고 받아들였다.
최근 차관급 인사의 향방도 변수였다. 금융권에서는 차관급 인사에 따라 금융회사의 제재 결정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유임됨에 따라 예고했던 대로 금융회사에 대한 중징계를 밀고 나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 28일 카드 3사(국민카드, 롯데카드, 농협카드) 등에서 고객정보가 유출된 것은 금융당국의 안일한 업무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미온적 인식이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각 카드사의 잘못보다 금융당국의 부실한 감독과 업무태만이 원인이라고 지목한 것이다. 특히 국민카드에서 국민은행 고객정보가 유출된 것에 대해 감사원은 관련법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정반대의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감사원은 금감원 직원 2명에 대한 징계도 촉구했다. 이들은 카드사가 개인정보를 암호화하지 않은 채 외부용역업체에 제공한 것은 물론 PC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은 사실을 알았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일부 카드사에서 고객정보가 이동식저장디스크(USB)를 통해 유출되기 전 금감원은 해당 카드사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시간부족을 이유로 PC 533대 중 1대만 점검하고 모든 PC에 단말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이 같은 감독부실로 해당 카드사에선 총 2426만8743건의 개인정보가 세어나갔다는 해석이다.
또 금감원 날림 검사도 이번 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카드의 경우 총 보유한 PC가 6523대다. 이중 고객정보유출방지시스템을 설치한 PC는 6423대다. 숫자만 봐도 각각 100대가 차이난다. 그런데 평가표에는 모든 PC에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으로 표시돼 있다. 숫자에 민감해야 하는 감독당국이 숫자에 어두웠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현장검사에서 카드사가 파기해야 하는 고객정보 615만8172건을 그대로 보관·관리한 사실을 알았지만, 단순실수로 보고 눈감아주기도 했다. 이처럼 파기하거나 별도로 보관했어야 할 개인정보 2649만건이 추가로 빠져나갔다. 이번 카드사 정보유출 규모가 컸던 직접적인 원인이다.
'부러진 칼날' 제재심의 영향 미칠까?… KB금융은 '유권해석'이 결정적
이번 감사 결과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분은 KB금융지주에 관한 유권해석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제48조2의 규정을 보면 금융지주회사가 그에 속하는 자회사 등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특례를 허용하고 있다"며 "금융위의 유권해석은 현행법의 해석으론 무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위는 금융회사가 영업양도 등을 이유로 타인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승인하는 업무를 한다"면서 "하지만 금융위는 승인받아야 할 56개 회사 중 49개사가 승인받지 않았는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언급한 금융지주회사법 제48조2는 지난 2012년 옛 행정안전부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소관법령을 정비토록 했던 대상에 포함된다.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허락 없이 공유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는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를 무시했다.
감사원 결과에 따른 금융당국과의 쟁점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의 중징계 여부다.
금융위는 영업분할을 이유로 고객정보의 일괄 이관은 금융지주회사법상 고객정보 제공에 대한 특례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할 때 금융지주회사법이 아닌 신용정보법을 적용해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 같은 유권해석에 무리가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쉽게 말해 지주회사에 대한 특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시각 차는 향후 임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의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감사원 결과는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와 거의 무관해 보인다"면서 "그동안 임 회장에게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금융당국 입장에 감사원이 반기를 든 페이퍼"라고 총평했다.
그는 이어 "감사원의 유권해석이 강제성을 갖지 않더라도, 금감원이나 금융위가 상급기관인 감사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제재심의 결정을 미뤘던 이유는 당사자의 소명이 길어져서가 아니라 감사원 결과를 기다렸기 때문"이라며 "이번 감사 결과를 요약하면 임 회장에 대한 징계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여론이 부담된 듯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KB금융의 소명시간을 상당부분 할애하면서 다른 금융권 제재 대상자들의 소명기회를 늦췄다.
그러면서 그는 "감사원 결과가 임 회장에게 유리하게 나온 만큼 제재심의 양형사유로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KB금융지주의 경우 이미 제재심의위원회에 안건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며 "감사원 결과가 제재심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금융위 쪽 의견이 먼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모든 상황에 대해 부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특히 유권해석 부분은 아직 제재심의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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