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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 맞는 총리' 이유는 매뉴얼이 너무 많아서


입력 2014.04.20 10:13 수정 2014.04.21 11:09        조소영 기자

전문가들 "재난시 매뉴얼은 많지만 통합관리 못해"

부처간 정보를 통합하고 통제하는 실제 '본부' 부재

'세월호'가 침몰한지 72시간이 지난 19일 오전 전남 진도 관매도 앞바다 침몰 현장에서 구조작업중인 해난구조대원들이 수색을 위해 잠수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지 72시간이 지난 19일 오전 전남 진도 관매도 앞바다 침몰 현장에서 수면아래로 사라진 '세월호'에 리프트빽(공기주머니)이 설치된 가운데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침몰 4일째인 19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3일째인 18일 오후 실종자 268명이 생사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구조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천안함이 침몰한지 사흘째 되는 날인 2010년 3월 29일, 평택 제2함대 사령부. 구조 상황에 대한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 있던 이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군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분노 섞인 울음을 터트리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군 관계자들은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물론 앞뒤로 멱살이 잡히고 내동댕이쳐졌다.

4년 후,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전남 진도읍 실내체육관. 정홍원 국무총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지만, 거친 항의에 물세례까지 받고 ‘쫓겨났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단상에 오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족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하려 할 때마다 야유와 욕설을 받았다.

두 사고는 닮았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해상사고’라는 표면적인 공통점은 물론 국가적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민이 전적으로 믿고 기대야할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대처다.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은 모두 사건 초기 현장 상황 보고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노출하면서부터 신뢰를 잃었다.

2011년 3월 정부가 펴낸 ‘천안함 백서’에 따르면 △사건 발생 시각을 수차례 변경해 발표하면서 혼란과 불신을 야기 △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가동되는 군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초기 대응 미흡 등을 고백한다. 세월호 또한 사고가 일어난 16일부터 승선자 수와 구조자 수를 수시로 바꿔댔으며, 각 부처 간 업무 혼선은 18일에야 명확해졌다.

정 총리는 19일 진도군청에 마련된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서 브리핑을 통해 “(그간) 발표에 혼선이 있었던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어제 체계를 확실히 했으며, 앞으로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나흘 만에야 사고 대응 창구가 일원화된 셈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국가 최고 권위자인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에야 현장CCTV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다녀간 뒤에도 “지휘체계는 전혀 없고, 각 부서는 오버해버리면 안 된다는 틀이 깨지지 않는다”는 분통이 터져 나온다. 각계각층은 이렇게 미봉책을 내놓는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문제에 대한 ‘매뉴얼’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긴급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전혀 없는 것일까. 답은 ‘있다.’ 이명박 정부에 몸담았던 인사와 전문가들은 ‘데일리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매뉴얼은 매우 많다”고 전했다.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라는 답까지 돌아왔다. 다만 수많은 매뉴얼은 ‘각 부처 간 상호작용을 통한 신속·정확한 문제해결’이라는 핵심을 짚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것이다.

전 정부 측 한 관계자는 “사고 발생 시 위원장은 누가 할지, 각 부는 어떻게 통할할지 조직 구성에 관한 매뉴얼은 당연히 있지만, 사실 그대로 안 된다”며 “한곳으로 정보가 모이지 않으면서 정보의 혼재와 불통제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없애기 위해 각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3.0’을 구축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갈 길이 멀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됐다.

세월호 사건에서 ‘활약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 안전행정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정부3.0’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16일 오전 8시 52분) 후 약 1시간(9시 45분)이 지나서야 가동되는 등 우왕좌왕했다. 냉소적으로 변한 국민은 중대본을 보면서 “‘노란 옷’만 입고, 하는 일은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위기대응을 하는 곳은 안행부이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 지시로 모든 부처를 총괄하는 총리실이 확대·개편돼야 한다. 총리가 이 사건을 지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말처럼 정 총리는 사고 수습의 수장으로 나섰다. 그러나 재난본부시스템의 처음과 끝이라 불리는 ‘정보 관리’는 이미 실패한 뒤였다.

각 지역, 부처 등 '일원화된 시스템' 구축 가능할까

이응영 인천소방방재청 사무관도 “세분화된 매뉴얼은 많으나 세밀하지 못하게 서술돼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관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냉장고 앞까지 데려오는 많은 절차 등이 있을 텐데 그것은 없고 ‘코끼리를 냉장고 앞에 데려온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는 게 매뉴얼의 내용”이라며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내용뿐”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그러면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고가 난 후의 대응은 물론 사고가 일어나기 전 대비까지 총망라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때까지 대비를 위해 실시한 각종 훈련과 점검은 모두 ‘허울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9일 공개된 해양경찰청·해양수산부 합동 안전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여객선 안전 점검을 했지만, 1척을 검사하는 데 13분만이 걸리거나 극히 일부 선박만이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이 사무관은 이어 종합적 대책을 마련의 해답을 미국의 국토안보부(DHS)의 운영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의 국토안보부는 각종 자연재난과 위험물·오염사고와 같은 인적재난, 테러 등에 관한 대비·대응·복구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갖고 있으며, 그 운영은 2004년 만들어진 국가사고관리체계(NIMS)와 국가대응계획(NRP)에 따른다.

국가사고관리체계는 연방·주·지방 정부기관이 일원화된 사고지휘체계(ICS)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동일한 용어와 표준화된 업무처리 방식, 규격화된 장비 등을 명시한 것이고, 국가대응계획은 국가사고관리체계를 운영하는 연방의 권한과 책임 등을 규정한다.

쉽게 말하자면 국가사고관리체계와 국가대응계획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과 부처 소속 공무원, 비정부기관(NGO), 민간부문 등이 ‘단일팀’처럼 움직인다는 뜻이다. 형식상의 단일 체계만 있어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는 결국 견고한 ‘2N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2004년 국가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을 구축하고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을 만들었지만, 이는 소방만의 체계일 뿐 지휘체계를 단일화 할 수 있게 공통분모를 만들어내는 국가사고관리체계 등과는 다르다는 평이다. 이 사무관은 또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등에서 좋은 시스템을 도입하지만, 과도한 현지화를 하는 게 문제”라며 “손목시계에 부품을 몇 개 빼버리고 맞지도 않는 부품을 껴버린다”고 꼬집었다.

국가사고관리체계 등은 실제로도 효과를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에서 압력솥 폭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 시스템에 근거해 보스턴과 인근 지역, 경찰 및 다른 관공서 공무원들은 긴밀한 협조를 했다. 19일 범인은 잡혔다.

지난 18일 SBS라디오에 출연한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지방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 또한 국가사고관리체계 등에 적시된 내용이다. 조 교수는 “지방 실무 담당자는 현장을 지휘해야 하고, 중앙정부는 현장 사람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며 “서울에서는 현장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힘들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9.11테러가 났을 당시 현장을 총괄한 사람은 그 지역의 9개 블록을 관장하던 현장 소방관이었다”며 “직급으로만 본다면 소방관이 저 밑에 있지만, 최고 상관인 뉴욕시장도 그 소방관 밑에서 모든 정보와 물자를 제공하는 등 지휘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논리에 따라 세월호 사건 또한 현장과 가까운 목포지방해양경찰청이 주체가 돼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책임만 있을 뿐 각종 지원에 대한 권한은 없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는 고식지계가 될 것으로 보는 예상이 많다. ‘물통 맞는 총리’가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조소영 기자 (cho1175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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