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차게 무관심하던 김한길이 북한인권법을? 글쎄...
"'인권' 뒷전 '민생'에 방점 둔 기존 입장 되풀이 안돼"
최근 정치권에서 수년째 국회 내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를 바라보는 북한인권단체들은 기대감 이상으로 우려감을 내비쳤다.
오랫동안 북한인권법에 무관심하던 민주당은 13일 김한길 대표가 북한의 인권과 민생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민생법’을 당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정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 아래 북한인권법 제정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물론 민주당도 ‘북한주민인권증진법안’(심재권 의원) ‘북한민생인권법안’(윤후덕 의원) 등 5건의 북한 인권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주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
이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 예방과 처벌 가능성까지 아우르는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과 번번이 충돌해 수년째 국회에서 북한인권 관련 법안이 단 하나도 통과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에 김 대표가 진보세력의 당 대표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문제와 관련, ‘민생’이라는 표현 앞에 ‘인권’을 명시한 법안을 마련키로 한 것은 파격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정치권이 북한인권법을 두고 설왕설래를 하는 동안 오래전부터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고, 활동해온 관련 단체장들은 이번 김 대표의 발언을 일정 부분 반기기는 하지만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민주당이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인권'보다는 ‘민생’에만 방점을 둔 채 실질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없던 상황에서 이번 법안 역시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그동안 북한인권단체들의 끊임없는 요청에도 북한인권법에 침묵하면서 구체적인 정책마련에 대한 자문조차 듣지 않던 민주당이 과연 진정성을 갖고 해당 법안을 마련할 수 있겠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인권위원회 상임위원를 지낸 김태훈 변호사는 1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 대표가 이례적으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언급한 것은 반길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그동안 이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태도나 정책마련 과정을 보면 이번 법안도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북한인권법이 정말 실효성 있게 운영되려면 무엇보다 북한 당국의 잔혹한 인권유린 사태를 기록하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기관이 명시돼야 한다”며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의 핵심 사안 중 하나로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고 재단 산하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라는 별도의 기구를 마련해 북한 당국의 인권탄압 사례를 수집, 탄압당사자에 대한 처벌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햇볕정책 아래 ‘내정간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 추진을 반대해왔다.
북인권단체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없인 빈 껍데기에 불과”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도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이 해당 법안에 명시되지 않으면 사실상 빈껍데기인 정책에 불가하다”며 “민주당이 정말 진정성을 갖고 북한인권 문제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이 조항을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와 함께 북한인권단체나 전문가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도 논의돼야 한다”며 “하지만 민주당은 관련 단체들에 대한 지원 논의는 커녕, 단 한 차례도 우리 단체들과 접촉하지조차 않았다. 각종 사회 이슈에는 민간단체의 의견 수렴을 민주주의 우선 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이 정작 북한인권 민간단체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 대표는 “오히려 이번 민주당의 법안 추진도 단순히 여론호도 식으로 활용할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변호사도 “정말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구체적인 인권정책을 만들려고 구상했다면 미리 북한인권단체나 전문가들에게 방안 논의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민주당은 요지부동이었다”며 “정작 우리가 초청했던 인권세미나나 행사도 일절 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김 대표의 발언만 갖고서는 그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동안 각종 북한인권 세미나나 행사를 열면 민주당을 포함 야권 인사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민주당이 진정으로 북한인권법을 제대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 북한인권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등 기존의 입장에서 진일보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고, 여당과 합의점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 사무국장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은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다”며 “오히려 정작 이 문제에 선봉에 나서야하는 한국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민간단체들만 목소리를 내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권 사무국장은 “그 점에서 김 대표의 이번 발언은 반가운 뉴스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지금이라도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인권 문제 개선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민주당이 형식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선방안도 반드시 해당 법안에 포함시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민주당은 김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수정 가능성을 언급한 지 하루 만에 당 소속 정책연구소가 이에 대한 구체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벌써부터 당내 파열음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협상을 주도했던 박지원 의원은 “햇볕정책 때문에 북이 핵을 개발했는가”라고 발끈하고 나서 향후 민주당 내 북한인권민생법 추진마저 순항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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