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KADIZ 선포? '현관' 열고 '옥상'만 지키기
방공식별구역 설정 논란 "정작 바다 밑은 방치라니"
"국토면적 3배 달하는 대륙붕 법 한국만 없는 상황"
“이어도 문제는 1층 현관문이 열렸는데, 옥상만 바라보는 격이다.”
이어도 해역이 위태롭다. 정부가 8일 이어도까지 확대한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했지만, 정작 이어도 바다를 지킬 현실적인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어도 해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틈바구니에서 이어도를 지킬 전략적 외교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특히 중국의 영토야욕에 방어선을 칠 수 있는 ‘대륙붕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토면적 3배 달하는 대륙붕에 관한 법 한국만 없는 상황"
이어도 해역을 노리는 중국과 일본에는 대륙붕법이 있지만, 우리만 관련 법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이어도 해역의 해양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국내법으로 우리 해저의 대륙붕 권리를 보호할 법을 만들면 국제법으로 효력도 주장할 수 있다는 게 법학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대륙붕의 범위를 ‘대한민국 영토가 영해 밖으로 자연적으로 연장돼 있는 대륙변계 바깥쪽 끝까지의 해저와 그 하층토’로 명확히 규정해야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현재 34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스위스처럼 내륙국이나 터키처럼 대륙붕이 없는 나라를 제외하고 대륙붕법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며 “남한영토의 3.5배에 달하는 광대한 대륙붕과 그 자원에 대해서 우리 주권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국내법 제정이 아주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정말 중요한 것은 이어도 해역과 해수면, 그 안에 지하자원인데, 마치 이어도 하늘을 뺏긴 것처럼 방공식별구역을 붙들고 있다”며 “이젠 바다 밑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도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이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곳도 상공이 아닌 이어도 바다와 그 아래 대륙붕이다. 이어도 해역에는 오징어, 갈치, 우럭 등 수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주변 대륙붕에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어도 인근 해역에 대한 대륙붕 개발 여부에 따라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어도 주변에는 최대 10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는 곳으로 영화 ‘제7광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어도 문제, 방공식별구역 선포한다고 해결되지 않아"
문제는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를 수직으로 ‘1층 해저, 2층 해역, 3층 상공’으로 나눠보면, 해양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1,2층인 해저와 해역이다.
반면 ‘3층’에 해당하는 방공식별구역은 자국의 방어상 필요한 비행통제구역으로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 선언적 개념이다.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 방공식별구역 논의에 집착하는 것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의 KADIZ 조정안을 주변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에 그칠 수 있다.
정부의 이번 선포는 중국이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이후 ‘중국이 이어도 상공을 노린다’는 들끓는 여론에 방어선을 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강효백 교수는 “이어도 문제에서 방공식별구역(포함 여부)은 중요치 않다”며 “정말 시급한 문제는 하늘이 아닌, 바닷길과 해저광물 자원 등이 포함된 바다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독도처럼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면서 “이어도 문제는 우리가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다고 해결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바다야, 멍청아'… "1층에 도둑 들게 생겼는데 옥상만 보는 꼴"
실제 이어도는 독도처럼 영토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 2003년 해양과학기지를 세우며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이지만, 섬이 아닌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우리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한 외교전문가는 여론에 춤추는 정치권과 이에 흔들린 정부를 지적하며 “큰 의미가 없는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실익이 아닌 이벤트 차원으로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신중해야할 외교가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고도 했다. 언론도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강효백 교수는 “1층에 도둑이 들게 생겼는데, 옥상만 바라보는 꼴”이라고 일침을 놨다.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 방공식별구역 논의에 집착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그동안 옥상에서 하늘만 바라봤다면, 이제는 가장 중요한 1층을 지키는데 주력해야 한다”며 ‘대륙붕법 제정’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맨 꼭대기인 3층은 이번에 KADIZ 확장 조치로, 2층의 바다 어업권은 1996년에 제정한 배타적경제수역법으로 보호되고 있다”며 “현재 1층 대륙붕의 지하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대륙붕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생떼 쓰는' 중국 막으려면 "국제법 근거 마련해야"
‘해양자원의 보고’라고 불리는 이어도에 대한 해양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이웃나라에선 외교논리를 세우는데 몰두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해양주권 가운데 하나인 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과 관련, ‘형평의 원칙’과 ‘자연적 육지연장이론’을 내세운다. “우리 인구가 많고, 해안선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한국 보다 EEZ도 그만큼 커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우리는 해양 경계를 ‘중간선 원칙’으로 획정하자고 주장한다.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쪽 직선거리로 149km 떨어진 반면, 중국 ‘서산다오’로부터 287km 떨어져 있고, 무인도인 ‘퉁다오’를 기점으로 해도 247km에 달한다.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370.4㎞)까지 인정되는 EEZ를 기준으로 하면, 이어도 해역은 중국과 서로 겹치는 곳이다. 중간선을 긋게 되면 당연히 우리가 관할권을 가져야 하지만, 중국은 힘의 논리를 내세워 ‘생떼’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중국은 ‘이어도 야욕’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1999년에는 이어도 부근을 탐사한 데 이어 2006년엔 이어도를 중국식 이름인 ‘쑤옌자오(蘇岩礁)’로 명명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중국의 주장에 맞서는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도 대륙붕법 마련은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국제법 관련 전문가들은 “국제법 근거를 마련해서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일본은 국제법에 기초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서 UN을 통해 더 넓은 대륙붕을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 1996년부터 이어져온 이어도 수역에 대한 한중 간 EEZ획정 협상이 다시 열리면 또 다른 논리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대륙붕에 대해서도 주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내용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배타적 경제수역과 마찬가지로 대륙붕에서도 △천연자원의 탐사·개발·보존·관리 △에너지 생산 △경제적 개발·탐사활동 등의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개정안엔 대륙붕에서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대한민국 법령을 위반하면 국제협약에 따라 배를 멈추게 하고 검색, 나포 등의 사법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