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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소는 살고 말은 죽다' 그럼 윤석열은?


입력 2013.10.22 11:44 수정 2013.10.22 11:49        이상휘 선임기자

<칼럼>자의적 판단과 독단적 행동이 검사가 할 행위인가

어느 것이 옳은 일인가? 법과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인가. 아니면 공명심에 조직의 명운까지도 버린 것인가.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의 행동을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팀장이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다. 물살이 거센 강물에 말과 소를 던져놓았다. ‘누가 살겠는가’라는 물음이다. 헤엄을 잘치는 말이 죽고 그렇치 못한 소는 산다.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고, 소는 물살이 흐르는대로 몸을 내맡긴다. 결국 말은 지쳐서 죽고 소는 마침내 강기슭으로 살아서 나온다는 말이다.

물 흐르듯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가르침이 우생이요, 남보다 잘 났다고 오만하면 안된다는 삶의 가르침이 마사다.

윤석열 전 팀장은 어디에 해당될까.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다. 어쩌면 우생도 마사도 아닐터다. 그저 직분을 다하는 한 사람일 뿐일수도 있다.

그러나 검사 윤석열의 행동을 곱게만 볼 수 있을까 싶다. 소신이라 하지만 욕을 먹을 만한 부분이 많다. 국정원 직원을 무단으로 구속했다. 국정원법 23조를 위반한 것이다.

그는 국정원법을 몰랐을까?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이다. 국정원 직원들을 석방했다. 그리고 법원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윗선의 결재를 받지 않았다. 검찰청법 7조를 위반한 것이다. 명령도 불복종했다. 국가공무원법 제57조 복종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다 알고 있으면서 실행한 것이다. 고의적인 행동이 틀림없는 것이다.

윤 전 팀장은 국감에서 말했다. 사전 보고가 있었으며, 지검장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법과 양심에 비춰 윗선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혼자 결행했다는 뜻이다.

일견 소신있어 보인다. 그러나 몇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자의적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그럴 것이다’는 식의 해석은 오류를 빚는다. 더구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더욱 그렇다.

자의적 판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윗선이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자의적인 것이다. 사안이 중대한 것 만큼이나 설득을 시켰어야 했다. 섣부른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부 보고체계를 무시한 것은 지나친 오만이다. 검찰의 경우 검사 한 사람의 힘은 엄청나다. 특수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적당한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내부보고 단계다. 오용하면 사회적 파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부보고는 완충적 역할도 하는 것이다. 물론 상명하복의 검찰특성도 있다. 윤 전 팀장은 이를 무시했다.

시점도 오해를 살만하기에 충분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은 사회적 관심이 매우 크다. 정권의 정통성까지 맞물려 있다. 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있을 수 있다. 더구나 국정감사 기간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그래야 했었나 싶다.

본인은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특정 정치집단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정세를 뒤집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니 정치적 의도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노무현 정권이 집권하면서 검사로 다시 돌아왔다. 그 전엔 법무법인의 변호사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 전 팀장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라인이다. 2006년 채 전 총장이 대검수사기획관 당시 함께 일을 했다. 한상대 전 총장의 퇴임을 촉구하는 이른바 ‘검란’당시는 채 전 총장의 손을 들었다.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인해 현 정권과 마찰을 빚었다. 시중에는 파다한 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팀장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채 전 총장의 억울함(?)을 대변하려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진정으로 소신있는 검사라면, 이 같은 시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순수했다면 말이다.

우생마사,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우리네 인생에 어느 것이 맞는 진리인지는 모른다. 얼굴이 다르듯 판단도 다를 것이다. 윤 전 팀장을 빗대어 보면 우생은 약삭빠른 처세요, 마사는 소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인생을 빗대어 보면 우생은 현명한 삶이요, 마사는 교만일 수 있다.

검찰은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 지혜롭고 현명한 것인지 혼란스럽다. 아마도 정답은 없을 것 같다. 우생마사든, 우사마생이라도 좋다.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 후배 검사의 진술을 보고 선배검사는 눈물을 흘렸다. 국민은 걱정스럽다.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을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사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뭔지를 말이다.

이상휘 기자 (shon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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