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 통해 한미일 北비핵화 성명에 반발
"실현 불가능한 망상…시도 자체가 적대 행위"
전문가들 "비핵화 불가의 확실한 '문턱' 제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입' 역할을 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한·미·일 외교장관의 북한 비핵화 의지 재확인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미국을 향해선 "이미 사문화된 '비핵화' 개념을 부활시켜 보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가장 적대적 행위"라며 열을 올렸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신호탄으로 읽힐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대화국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협상 테이블 위에 '비핵화 의제'는 절대 올릴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지난 8일 '미한일의 시대착오적인 '비핵화' 집념은 우리 국가의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제목으로 담화를 발표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전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3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에 담긴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실패한 과거의 꿈속에서 헤매이며 '완전한 비핵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 판별수준이 어느 정도로 구시대적이고 몰상식한가를 스스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는 "진짜 그것을 믿고 '비핵화'를 열창하는 것이라면 뭐가 모자라다는 말밖에 듣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김 부부장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외부의 적대적 위협과 현재와 미래의 세계안보역학구도의 변천을 정확히 반영한 필연적 선택의 결과"라며 "누가 부정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면전에서 핵포기를 공공연히 떠드는 것은 물론 이러저러한 보자기를 씌워 이미 사문화된 '비핵화' 개념을 부활시켜 보려고 시도하는 것 그 자체도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을 부정하고 헌법포기, 제도포기를 강요하는 가장 적대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부부장은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그 누구의 '위협'을 떠들어대며 시대착오적인 '비핵화'에 계속 집념한다면 최강의 자위적 핵력량 구축을 지향하는 우리의 전진도상에 무제한의 당위성과 명분만을 깔아주게 될 뿐"이라고 위협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미 항공모함 칼빈슨함의 부산 입항 때 "전략적 수준의 위혁적 행동을 증대시키는 선택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지난달 3일 이후 한 달여 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확인됐듯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외교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가 북한의 핵보유 의지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북한이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반도와 전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즉각 중단하고, 비핵화와 대화의 길로 복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했으나, 이번 김 부부장의 담화로 또다시 차가워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김 위원장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로 다시 지칭하며 1기 때와 같은 관계를 다시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다시 재구축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렇다(I would)"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기 포기 의사가 없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밝혀왔고,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만 이번 담화를 보면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 이유와 목적을 상당히 논리 있게 제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 부부장이 직접 등판해 공개 반박에 나선 것도 북한 당국의 입장을 미국에 강력히 주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담화에 대해 "비핵화 불가의 확실한 '문턱'을 제시했다"며 "강한 핵 억제력 보유(실체적), 최고법 및 기본법에 의한 법적 고착(법적), 외부의 적대적 위협(상황적), 세계 안보 역학 구도 변화(국제질서) 등 매우 세부적으로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담화는 기존 세 차례 논평이나 담화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비핵화 불가' 및 '핵무기 고도화 당위성'을 제시했다"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대화 시사와 핵 보유 인식 발언 등 대북한 접근 가능성을 의식해 트럼프 행정부에게 확실한 북한 입장을 전달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부부장의 등장은 단순히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기존 입장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대미 관계,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요한 정치적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이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은 한 협상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북미관계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의 자위적 핵 역량 강화가 가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