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금투세 폐지' 이어 '가상자산 과세 유예' 이끌어
'이재명 선고' 직후 '민생·경제'에 집중하며 '차별화'
일각선 '당원게시판'과 '전국민적 어젠다 상실' 우려
당내선 "전국민 끌어야" 조언하나 현실 제약 지적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민생에 방점을 찍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거대 야당으로부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동의를 이끌어내며 일부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지만, 당 안팎에선 전국민이 기억할 만한 확실한 어젠다가 아직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당내에선 한 대표가 국민들에게 각인될만한 확실한 경제 어젠다를 선점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한 대표는 1일 민주당이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에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국민의힘이 국민들과 함께 집중해서 주장해온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결국 결정됐다. 청년을 위해 좋은 일이다. 국민을 이겨먹는 정치는 없다"고 적었다.
앞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깊은 논의 끝에 지금은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안 대해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자 마자 이를 환영하며 쓴 글이다.
이처럼 한 대표가 청년 또는 민생을 걸고 민주당을 압박해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는 한 가지 더 있다. 금투세 폐지가 그것이다. 한 대표는 지난 총선 당시 비상책위원장이던 시절 부터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금투세를 폐지해야 한단 주장을 펼쳐온 바 있다. 이로 인해 민주당은 폐지파와 유지파로 나눠저 금투세 토론회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에도 한 대표는 "금투세 폐지는 민생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민주당을 압박했다. 이에 민주당은 결국 지난달 4일 "현재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주식시장에 기대는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 이재명 대표의 말과 함께 '금투세 폐지'를 전격 결정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즉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투세가 폐지된다. 대한민국 1400만 투자자의 승리"라는 승전고를 울렸다.
다음으로 한 대표가 집중하고 있는 민생 경제 어젠다는 '정년 연장'이다.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까지 늘려, 국민연금 수령 가능한 기간까지 발생할 공백기를 막을 수 있게끔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한 대표는 "현대자동차에선 생산직의 경구 정년 이후 초봉으로 다시 시작하는 제도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보면 참여 의사가 높았다"(지난달 29일, 청년 정책 토크콘서트 중)는 일화까지 꺼내들며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년 연장 정책의 성공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민주당이 정년 연장 정책에 공감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4월에 치러진 22대 총선 당시 중소·영세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법정 정년 연장을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 한 바 있다.
한 대표가 지난달 27일 열린 격차해소특위 회의에서 꺼낸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정년 연장을 후순위로 미루고 중소기업 등 작은 사업장에서 먼저 시작하는 방식으로 제도 보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과 일맥상통하다.
이외에도 한 대표는 최근 다양한 민생, 경제 현안에 일일이 직접 메시지를 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00%로 낮추자 마자 "추워진 날씨처럼 민생이 팍팍한 지금 금통위의 결정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당 대표로서 환영한다"며 "신규 대출금리가 낮아지도록 부동산 시장 정상화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STO(토큰증권발행) 포럼 조찬 간담회'에 참석해 "토큰 증권에 대해서는 사실 이걸 허용하냐 마냐, 이런 찬반의 문제 단계는 지나갔다"며 "정치가 할 일은 제도 내에서 불공정 거래나 이용자의 불편, 이용자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철저히 준비하고 거기에 걸맞은 제도를 늦지 않게 내놓는 것"이라고 말하며 청년층의 호응을 기대할 수 있는 가상자산 제도 정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당내에선 이같은 한 대표의 최근 행보가 정중동을 걷고 있단 점에선 똑같이 평가하고 있다. 한창 민생과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인 만큼 한 대표가 정쟁에 몰두하기보단 경제적인 이슈를 끌고 나와 국민의힘이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분석에서다.
다만 당 안팎에선 아직 한 대표가 전국민을 사로잡을 이슈와 어젠다를 선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최근 당원게시판 논란 등 친한계와 친윤계가 치열하게 맞붙은 정쟁 이슈들이 터져나오면서 생각보다 빈약한 경제적 어젠다로 인해 한 대표의 민생 행보가 모두 "당원게시판 논란에 묻히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김건희) 특검까지 얽혀서 뭐를 하든 당원게시판에 묶일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됐다"면서도 "지금 같을 때 진짜 큰 경제 이슈를 하나 던지는게 중요한데 아쉽게도 그런게 없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에 일각에선 한 대표가 오히려 힘을 좀 더 빼고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다. 현재 국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경제적 어려움이 물가, 대출 등에서 기인하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아직도 지역에선 25만원 지원금 얘기를 하시는 어르신들이 있다. 그만큼 25만원을 준다는게 전국민에게 혹하는 면이 있었던 것"이라며 "꼭 돈을 풀어서 표나 민심을 사는 게 아니라 전국민이 관심이 있는 분야에 힘을 실어야 한다. 생필품을 사는데 뭔가 도움을 준다던지 하는 것이 대표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내 다른 측에선 한 대표가 경제적 어젠다를 선점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거대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이 모든 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한 대표의 정책적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또 다른 국민의힘 한 의원은 "금투세 폐지 같은 이슈는 일반 투자자들과도 잘 닿아있었고, 민주당의 항복까지 받아냈으니 국민들에게 먹힐만한 사안이긴 했다"면서도 "문제는 금투세처럼 거대 야당인 민주당의 동의만 기다려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한 대표 입장에선 민주당이 안 받으면 어떻하지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마구 던기지가 어려운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