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경찰관 면담 당시 흉기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인지하지 못했다면…범죄예방업무 게을리 한 것"
"다만, 박대성 사례로 경찰에게 책임 묻기 시작한다면…공권력 과잉 사태 빚어질 수도 있어"
"일선 경찰에 대한 처벌 강화보다는…긍정적 인센티브로 책임감 장려하는 것이 더 바람직"
"묻지마 범죄는 강력히 처벌해야…범죄자들 '심리적 고립' 해소 시킬 정책도 병행돼야"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박대성(30)이 범행 전 극단적 선택 의심 신고로 경찰과 만났고 면담 후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에선 경찰관이 박씨와 면담했을 때도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는 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경찰관이 이 대목에 대한 인지와 파악에 소홀했다면 범죄예방업무를 게을리한 만큼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선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면 공권력 과잉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기에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조언했다.
9일 순천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12시15분께 박씨의 친형은 "동생의 극단적 선택이 의심된다"며 119에 신고를 했다. 공조 요청을 받은 경찰은 신고 접수 3분 만에 박씨가 운영하는 순천시 조례동의 가게에 도착, 5분여 동안 면담했다고 한다. 당시 박씨는 술에 취해 있었으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괜찮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씨에게서 횡설수설한다거나 자살 의심 징후로 볼만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해 별다른 조치 없이 현장 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박씨는 경찰과의 면담 후 흉기를 챙겨 밖으로 나와 길을 걷던 A(18)양을 뒤따라갔고, 오전 12시44분께 살해했다. 경찰 면담 후 20여분 만이다. 박씨를 검거한 경찰관과 자살 의심 신고를 받고 대면했던 경찰관은 동일인으로 전해졌다.
문유진 변호사(판심 법무법인)는 "업무상과실치사는 사람의 생명, 신체를 업무상 과실로 다치게 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이태원 참사 당시 업무상 부실대응했다는 이유로 前 용산경찰서장과 용산서 112상황실장이 각각 1심에서 금고 3년과 금고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사건이 대표적"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경찰이 식당에 출동했을 때 '피를 흘리고 있다'는 신고와 현장 상황이 달랐던 이유, 박씨가 경찰과의 선행 면담 당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라는 발언을 했다든지, 흉기를 당시에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정 등이 밝혀진다면, 경찰이 박씨의 범죄의 위험성을 예견했다는 정황이 인정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문 변호사는 "박씨를 면담했던 경찰이 그가 살인을 저지를 징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하고도 범죄예방업무를 게을리했다는 점이 입증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문건일 변호사(법무법인 일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한다면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공권력의 과잉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또 일선 경찰 인력들의 과중한 업무량에 비추어 보면 보신주의적인 업무태도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처벌 강화 보다는 긍정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맡은 임무에 책임감을 다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문 변호사는 "피의자들은 대부분 본인의 혐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피의자들의 경우 감경이나 지연의 목적보다는 처음에는 회피 목적이 크다"며 "다른 증거가 없다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박씨도 일단 부인을 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범죄자들을 선제적으로 관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그렇기에 묻지마 범죄에 대해선 더욱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최선이다. 뿐만 아니라 범죄자들의 심리적 문제를 사전에 파악해 고립을 해소시킬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예방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