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KDDX '공동 개발‧동시 건조' 방안 검토 밝혀
"리스크 최소화" vs "혼선 커질 것"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공동 개발‧동시 건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업계에선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방사청이 제안한 방식은 혼선을 더 확산시켜 당초 일정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공동 개발, 1·2번함 동시 건조'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KDDX 사업은 국내 기술로 6000t급 신형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으로, 총 7조8000억원의 사업비 투입된다. 방사청은 해당 사업의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에,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에 맡겼다. 이후 절차인 상세설계 및 선도함 제작 업체 선정은 응찰 기업 간 공방으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되면서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진 상황이다.
그간 업계에선 양사의 공방에 따른 사업 지연 우려가 제기돼 왔다. 당장 상세설계 및 초도함 제작에 들어간다고 해도 2030년 인도 일정을 맞추기 빠듯하다는 점에서다. 경찰은 '이른 시일내 수사를 종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결과는 여전히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방사청이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조용진 방사청 대변인은 지난 19일 정례브리핑에서 KDDX 사업 추진 방안에 대해 "(군사기밀법 위반 등과 관련한) 수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끝나더라도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수사 종료를 염두에 두고 사업 추진 방안을 결정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대변인은 "새로운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법적 가능성, 방산업체 지정과의 연계가 있어서 관계부처와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사업의 주체인 방사청이 일정이 미뤄지는 데 따른 업계의 불안을 불식시키고자 나선 것이다.
설계의 효율성 측면에선 수의계약이 낫지만, 공정성 측면에선 경쟁입찰이 맞다는 입장이 팽배한 가운데 방사청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정부의 발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두 업체 간 갈등이 심화한 상황에서 상세 설계를 위한 업무 분장 합의가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공동 개발을 추진할 경우 책임 소재를 따져 묻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더해 보안이 중요한 방산업체 간의 기밀 접보 교환이 어려워 협력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컨소시엄을 구성해 상세설계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초도함 두척을 동시 건조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론 두 업체가 공평하게 사업 기회를 얻는 좋은 대안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우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기본 설계에 대한 이해도가 동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 분장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양측의 건조 능력은 비슷하다고 해도 KDDX 기본 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진행한 만큼 상세 설계 과정에서 양측의 기술 격차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아울러 공동 설계를 진행한다면 기본 설계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공유해야 하는데 보안이 생명인 방산업체 간, 그것도 경쟁 업체 간 정보 교환이 원활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기술이야 정보 공유가 가능하겠지만, 구체적이고 보안등급이 높은 정보를 경쟁사와 공유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양사가 합의에 이른다고 한들 공동 설계 이후 문제 발생시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난제 중 하나다. 실제 대부분의 컨소시엄은 향후 책임소재를 이유로 주계약 업체를 선정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두 업체간 자존심 싸움이 불거질 가능성이 커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이같은 과정을 모두 해결하고 양사가 선도함을 각각 한 척씩 건조하는 경우에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 통상 건조 절차는 선도함 한 척으로 시험 평가를 우선 실시해 미흡한 점을 확인하고 보완한 다음 후속함 건조에 들어선다. 하지만 방사청이 제안한 '공동‧동시' 건조는 이같은 보완점 개선에 미흡할 수 밖에 없다.
초도함 건조가 해외 진출에 유리한 '경쟁력 보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향후 계열사 간 이익으로 이어지는 등 실익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나눠 맡는 두 업체가 '실익'도 공평히 나누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통상 초도함이 건조되면 이후 함정에는 1번함의 장비가 그대로 탑재된다. 구체적으로 A사가 초도함을 건조할 경우 A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업체들의 장비가 계속 탑재된다. 이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이 각각 계열사 및 외부 업체들과 구성한 컨소시엄 업체들에 실익으로 이어진다. 1‧2번함의 동시 건조가 현실성이 없다는 양측의 주장도 진짜 실익이 초도함 건조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두 척이 동시 건조되면 진수식은 누가 먼저하고, 앞선 선체 번호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 등 향후 해외 수주에 내세울 만한 상징적 우선순위 배분도 합의가 쉽지 않은 일이다.
업계 안팎에선 방사청이 제시한 방안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도 KDDX 사업이 더는 지체되서는 안되는 만큼 협의점을 찾고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방사청이 시일이 급하다고는 하지만, 제안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들춰보면 산 넘어 산처럼 보인다"면서 "보다 혁신적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사청이 많은 고민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본다. 디테일한 영역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면서 "결국 내수 시장을 넘어 전 세계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KDDX 사업이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방사청은 KDDX 관련 모든 절차를 연내 마무리할 방침이다. 조 대변인은 "사업추진 방안은 함정 사업에 미치는 영향과 국익을 생각해서 결정할 계획"이라면서 "연내 사업 추진 방안 결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