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허위제보로 체포돼 한달간 수감생활…무혐의 처분 받자 국가·경찰관 상대 민사소송 제기
법조계 "경찰, 맡은 사건 무혐의 판단 나와도 본인에게 패널티 없어…부실수사 원인으로 꼽혀"
"국가배상 인정되지만 형사보상 액수 터무니 없어…10배 이상 증액하는 게 국민 법감정에 부합"
"하급심서 다시 재판 받더라도 원고 주장 안 받아질 듯…억울한 부분은 무고로 다시 고소해 풀어야"
허위 제보에 속은 경찰에 체포됐다가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은 시민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구체적인 제보로 이뤄진 경찰의 수사활동은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인데, 법조계에서는 경찰의 잘못된 법률 판단으로 국민이 피해를 입었다면 경찰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된 이후 경찰의 수사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다며 권한이 커진 만큼 책임도 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5년 9월 특수절도미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뒤 구속영장이 발부돼 약 한달간 수감 생활을 하다 석방됐다. 경찰은 'A씨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고, 이에 구속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B씨가 일부러 허위 제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자신을 조사했던 경찰관과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으나, 2심은 경찰관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보고 국가가 352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법경찰관이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나 자료를 일부라도 누락하거나 조작하는 등 독자적인 위법행위 등을 하지 않은 이상 수사 활동이나 판단, 처분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황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확신)는 "경찰이 객관적인 정황에 반해 자의적인 사실인정 및 법률판단을 해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당한다면 국가의 손해배상책임뿐만 아니라 경찰 개인에 대한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수사권, 기소권이 분리된 이후 현재 경찰의 수사 권한은 막강하다. 권한이 커진만큼 책임의 범위도 커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또 "경찰의 경우 자신이 맡은 사건이 검찰·법원 단계에서 무혐의 판단이 나오더라도 본인들에게는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데, 이 점 또한 부실수사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구조에서는 경찰 개인에게 책임 있는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국가배상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현재 인정되는 형사보상의 범위와 위자료 액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현재의 10배 이상 증액하는 것이 국민 법감정에 부합하다”고 주장했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1심 재판부는 법 대로 판단한 것이고, 2심은 원고를 딱하게 생각해 법리 이상의 위자료를 얹어준 것으로 보인다. 원고 개인 입장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법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형사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런 실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 입장에서는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며 불편했겠지만, 제보자를 무고로 고소하는 등 다각적인 시선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의 취지상 하급심에서 다시 재판받더라도 원고의 주장이 받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무혐의로 정리된 사건인 만큼, 다소 억울한 부분은 무고를 통해 푸는 것이 좋겠다"고 부연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이번 판결이 국민 법감정에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여지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찰이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나 자료를 누락하거나 조작하는 등 독자적인 위법행위가 인정되는 사정이 없는 한 경찰관의 수사 활동이나 판단이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의자의 혐의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야 하는 것이고, 유죄여부는 공판 절차에서 판단된다"며 "구속수사 여부를 결정할 때는 구속에 필요성에 관한 형식적인 판단만 이뤄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