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횡재 비명횡사’로 가는 민주
거세당하고 있는 친문재인 세력
호위병 선발하는 공천은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 논란이 ‘피칠갑’으로까지 번졌다. 비명계(비이재명계) 인사들의 가죽을 벗기느라 손이 피범벅 되었다는 뜻이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로 가는 민주
홍영표 의원은 이런 말도 했다. 당의 경쟁력 조사에서 하위 20%에 들어간 데 대한 항의였다. 하위 20%에 속하면 경선에서 득표수 20~30%를 감산(減算: 빼어 셈함) 당한다. 이런 벌점을 안고 경선을 벌여 이길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당에서 득표력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경쟁상대로 붙일 텐데 무슨 재주로 이기겠는가.
둘러보니 자신뿐만 아니라 비명계, 특히 친문계(친문재인계) 유력자들의 가죽도 벗겨지고 있다. 그래서 감정이 더 격앙되고 용기도 생겨서 아주 거친 표현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런 억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공당이 국민들에게 유능한 대의원감을 추천하는 게 공천이다. 경쟁이 치열하면 분위기가 험해질 수도 있지만 하필이면 ‘가죽 벗기기’ ‘피칠갑’에 비유되는지 기가 막힌다. 애초에 이 대표가 말을 잘못 골랐다.
지난 19일부터 민주당 현역 평가 하위 20% 해당자에게 통보가 갔다. 김영주 부의장이 탈당을 선언하는 등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이 대표가 20일 이들을 달랜다고 한 말이 그렇게 거칠었다. ‘혁(革)’은 ‘가죽’이지만 ‘고치다’의 의미도 갖는다.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게 아니라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을 뜻한다. ‘혁신’이라는 용어에서 ‘가죽 벗기기’를 연상했다는 게 황당하면서도 신기하다. 인성의 자기 표출일까?
거세당하고 있는 친문재인 세력
당내에서는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자조적인 말이 떠돈다고 한다. 원래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민주당 이 대표의 ‘비명계 학살’을 예상하고 한 말이라는 데 갈수록 맞아 들어가는 분위기다. 하위 10% 통보를 받은 5선의 설훈 의원은 26일 CBS라디오에 나가 현역으로 단수공천을 받은 51명 중 취약지역을 뺀 40여 명 가운데 비명계로는 윤건영 의원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친명 좌장이라는 정성호 의원이 27일 SBS라디오에 출연, 비명계 의원 다수가 단수공천을 받았다고 반박했지만, 비명에 대한 심한 홀대라는 인상을 지우지는 못했다.
게다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희망지역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나 김영주·설훈·박용진 의원 등을 하위 20~10%에 가둬버린 것 등에서 이 대표의 칼질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루기가 버겁거나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용이 없다는 것을 과시한 셈이다. 이게 공천권의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적 생살여탈권이다. 비명계로서는 자기의 흠결이 당내 어느 누구보다 커 보이는 이 대표가 오히려 판관 노릇을 하는 현실을 감내하기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자신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앉아서….
무력감에 가장 심하게 시달리고 있을 사람은 누구일까?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감점 상태에서 경선을 치러야 할 친문 인사들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일 듯하다. 민주당 이 대표를 만나 ‘명문정당’, 그러니까 ‘이재명과 문재인의 정당’이라는 이름을 헌정하기까지 했는데 차갑게 외면당한 셈 아닌가.
친문의 몰락은 어쩌면 정해진 순서일지도 모른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라고 대깨문들은 소리쳤다. 문 전 대통령은 그 팬덤의 극렬한 지지에 고무되어 겸손을 잃었다. 독선에 빠져 독단‧독주를 일삼은 게 사실이다. 6·25 전사자 유족, 천안함 피격 희생자 유족, 제2연평해전 희생자 유족 등 24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놓고 김정은과 백두산 정상에서, 쳐들어 올린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 따위를 돌릴 정도로 그는 오만했다. 하필이면 현충일을 즈음한 오찬 행사 자리에서! (2019년 6월 4일)
호위병 선발하는 공천은 안 된다
그러므로 민주당 내에서 친문세력이 거세당하고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와 개딸들에게 제대로 무시당한 것을 제3자 입장에서 유감스러워야 할 까닭은 없다. 이 대표로서는 문 전 대통령과 그 측근 인사들이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싫게 마련이다. 그들의 영역싸움에 끼어들 까닭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심하지만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원내 제1당의 이지러지고 뒤틀린 공천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 무덤덤할 수는 없다. 선거야말로 대의민주정치 성립의 제1조건이고 얼개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는다면 대의민주정치는 그 의의와 존립 근거를 상실한다. 정당에 후보 공천권을 부여한 것은 그 집단의 양식과 책임의식을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당은 국리민복에 헌신할 인재들을 찾아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정당의 보스가 국회에 포진시킬 자신의 호위병을 선발하는 절차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행태는 민주정치에 대한 반역이나 다를 바 없다.
21대 국회가 보여준 것은 거대정당의 입법농단이었다(‘농단’은 민주당이 아주 즐겨 쓰던 용어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거대 민주당이 전반기엔 문재인과 대깨문, 후반기엔 이재명과 개딸들의 사병집합소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천에서 이 대표가 기대하는 게 무엇일지는 추측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친명 단일 세력화’일 터이다.
그 단계까지는 이 대표가 누구의 가죽이든 벗길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판단과 선택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국민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다 보고,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다. 선전·선동으로 대중조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교만은 스스로를 빠뜨리는 함정이 된다. ‘친명횡재 비명횡사’의 마술은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될 수가 있다. 재주는 자신이 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판은 국민이 한다. 그게 총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