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후보 경제정책·규제·노동정책·에너지정책 공약 살펴보니
문재인 정부는 역대 가장 노동계 편향적이라 불릴 정도로 기업들을 옭죄는 각종 친노조 규제들을 쏟아냈다. 그만큼 기업들은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이 어떤 기업관을 갖고 있는지, 노동계로 심하게 기운 힘의 균형을 정상화시킬지, 혹은 더 악화시킬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대선 판도가 사실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2파전으로 압축된 가운데 이들 두 후보의 공약이나 인터뷰, 각종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 등을 토대로 경제정책, 규제, 노동정책, 에너지정책 등을 살펴봤다.
◆경제 : 李 '큰 정부'…尹 '작은 정부'
이재명 후보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한다. 적극적인 확장 정책으로 정부 재정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조다. 그의 제1 공약이자 경제정책 기본 틀은 ‘전환적 공정성장’이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이른바 ‘기본 시리즈’가 이 후보의 경제공약의 근간을 이룬다. 정부가 전 국민의 소득과 주택과 대출을 보장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결국 기존 세제 개편을 통한 증세나 신설 세금을 통한 세수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걷어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에 따라 임의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큰 정부’를 만드는 방향성이 그려진다.
이 후보는 지난 28일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양극화와 불공정을 완화하고 자원배분과 경쟁에서 공정성을 회복함으로써 성장의 잠재력을 높여가야 한다”며 정부 주도의 자원배분을 강하게 추진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 확보만 해도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의 세 부담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소득은 2023년부터 ‘청년 125만원·전국민 25만원’에서 시작해 임기 안에 ‘청년 200만원, 전국민 100만원’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당장 2023년 기본소득에만 20조원 가량이 소요된다는 게 이 후보의 예상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기존 정부 예산절감 외에 기본소득토지세, 탄소세, 기본소득목적세 신규 도입과 조세감면분 축소를 제시했다.
기업들에게는 탄소세 신규 도입이 가장 가시적인 위기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이 가뜩이나 해외 시장에서의 환경규제로 고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리스크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통상 기업의 투자에 동반되는 조세감면이 축소될 경우 연구개발(R&D) 등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민간이 중심이 되고 정부가 돕는 경제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 16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이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민간이 알아서 하도록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부나 공무원은 자기 일을 그냥 하는 것이지, 어떻게 해야 기업이 성장하고 고용이 창출되고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 모른다. 자기 일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 후보의 정부 주도 경제정책과 명확한 차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공권력을 가진 쪽에서 (기업에) 갑질을 한다든가 이런건 이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2차 산업시대의 정부 주도형 자원배분과 중점산업육성 등을 갖고서는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가 없다”고 강조했다.
윤 후보의 경제정책 기조는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정부는 스타트업,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기업 성장 사다리가 복원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산 지출도 ‘과도한 국가채무를 만드는 정책은 지양한다’는 방향성이 확고하다. 무리한 복지에 집착하지 않는 만큼 ‘세금폭탄’ 우려도 덜하다. 기업 세제 측면에서도 기업의 부담을 줄여 투자를 유도하는 쪽으로 전환한다는 기조가 엿보인다.
윤 후보는 지난 2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이 법인세가 높아서는 좋은 투자처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고, 우리도 역외 기업 국내 유치를 위해서는 투자 유인책으로서의 세금 인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 지향 측면에서도 윤 후보는 이 후보와 확실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암참 간담회에서 “저는 자유시장 경제를 베이스로 해서 정책을 풀어나가고 민주당은 자유라는 말 자체를 잘 쓰지 않는다”며 “여당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 예측 가능성, 개인에 대한 존중 이런 것이 깔린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다수결에서 나오는 민주주의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출발점과 원천이 다르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규제 : 尹 '불필요한 규제 혁파'…李 '정부 시장 개입 강화'
윤석열 후보는 경제인들과의 만남에서 종종 ‘모래주머니 제거’를 언급한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 즉 규제를 혁파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16일 최태원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윤 후보는 “전 이해관계자 이니셔티브를 중시하는데, 거기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제가 규제개혁”이라며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빼 줘서 자유롭게 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바로 규제개혁”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월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는 “규제를 부과할 경제적, 시대적 이유가 상실됐는데도 폐지하기 어려운 규제를 살펴서 과감한 규제혁신을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규제개혁 대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기존 규제에서 일부를 개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제도적 기업 규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 외에 모두 금지하는 방식의 현행 ‘포지티브 규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 도입은 그동안 대한상의를 비롯한 경제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문재인 정부 체제 하에서는 수용되지 않았던 숙원 과제였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릴 만한 공약이다.
윤 후보는 최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법은 대륙법계 영향을 받아 법이 정해놓은 사업 종류에 따라 인가받은 것 외에 다른 사업을 하면 엄중한 형사책임을 지게 돼 있다”면서 “자본시장법이나 건설업법이나 모든 분야에 있어 국민 안전과 관계되는 게 아니라면 철저하게 네거티브 행위규제로서 제도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 포지티브 규제를 영미법 체계와 같이 행위규제를 두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윤 후보도 “모든 행정 관련 법제를 바꿔야 하는 대단히 큰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일을 맡을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후보는 “제가 차기 정부를 담당하게 되면 법조인으로서 전체적인 규제의 틀과 법 체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규제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생각”이라며 “현장에서 법을 적용해온 사람으로서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반드시 해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 관련 발언에서 규제 개혁과 관련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 주도 경제정책 하에서 규제를 통한 시장 통제는 필수적인 만큼 규제 개혁은 그의 경제정책 기조와 상충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규제와 관련된 발언은 28일 정강정책 방송연설에서 언급한 ‘규제샌드박스 활성화’ 정도다. 이 후보는 “불필요한 규제로 기업의 시장진출 기회가 박탈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샌드박스 활성화 지원사업’은 규제 합리화의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규제샌드박스란 사업자가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정 조건하에서 시장에 우선 출시해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제도다. 대한상의가 문재인 정부로부터 이끌어낸 규제 관련 최대 성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규제 개혁과는 차이가 크다. 더구나 이미 이전 정부에서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이 후보에게 여기서 진일보한 규제 개혁에 나설 의지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징벌적 배상 책임 등 규제를 강화하려는 태세다.
이 후보는 지난 8일 중소·벤처기업 관련 공약 발표를 통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하도급 갑질·기술탈취 등 불공정거래와 불법행위 근절 ▲지방정부에 불공정거래 조사권·조정권 부여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 확대 등의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중소기업 간 힘의 균형 회복을 위한 자발적 상생 제도화’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대기업 입장에서는 규제와 감시기관만 무더기로 늘어난 셈이다.
◆노동 : 李 노동이사제‧타임오프제 공약…尹도 찬성
노동정책은 기업들이 차기 정부에서 큰 변화가 있길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분야로 꼽힌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등 각종 친노조 규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노동정책은 문 정부의 친 노동계 기조를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계의 이른바 ‘촛불청구서’의 마지막 퍼즐인 노동이사제,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제 도입은 이 후보의 대표적인 노동 관련 공약이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서 발언권 및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일정 숫자의 이사 자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다.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 현실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이사회가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또 이사회에서 논의된 기업의 핵심 정보가 유출되거나, 노동이사가 노조측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행위가 발생할 것도 우려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만 노동이사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지만, 일단 공공기관에서 제도화되면 민간 기업으로까지 시행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 후보는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기존 주 52시간을 넘어 주 4일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언급한 상태다. 문 정부보다 더 급진적인 노동정책으로 기업들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윤석열 후보의 노동 관련 공약은 이 후보에 비해 덜 급진적인 것으로 평가받지만, 중도 확장 차원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15일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공무원·교원 타임오프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다만 노사 대립적 노사관계 해소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급속하게 이뤄지는 디지털 심화 과정에서 기업도 변하고 노동계도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기업과 노동자가 자신들의 입지만 찾는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산업 고도화 시기에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도 주52시간 근무제의 예외조항을 마련해 산업 현장과 근로자의 상황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 尹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李 '탈원전 아닌 감원전'
문재인 정부에서 짓고 있던 원전마저 폐쇄했던 극단적 탈원전 정책도 새 정부 들어서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29일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공사가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아 “집권 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 탄소중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신한울 외에도 안전성이 확인된,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 계속 운전을 허용할 것”이라며 “원자력 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가 2000여 개 중소업체 인력과 조직을 유지하고,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재입증해 원전 수출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2030년까지 미국과 공동으로 동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신규 원전을 10기 이상 수주해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할 것”이라는 공약도 제시했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돼 전력 가격 상승, 원전 산업 경쟁력 저하,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에너지 정책을 뜯어고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원전 안전성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 목표를 설정하고, 실효적인 안전 규제를 확보하겠다”면서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에너지·원자력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도 문 정부의 극단적 탈원전 정책에서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22일 과학기술분야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재명 정부의 미래 원자력 발전 정책은 ‘감(減)원전’ 정책”이라고 밝혔다.
이미 가동하거나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들은 그냥 계속 지어서 가동연한까지 사용하고, 신규로 새로 짓지는 않는 방식을 ‘감원전’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후보는 “건설 중인 건 건설해 가동 연한까지 사용하느냐, 아니면 계획 단계 정도이니 안 하는 쪽으로 가야하느냐의 경계선에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신한울 3‧4호기는) 폐기라기보다 멈춰서있는 것이고,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지, 안 하는 것으로 확정된 게 아니다”라며 국민 여론에 따라 건설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