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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전 박근혜 사면, 변수의 증폭인가 관리인가


입력 2021.12.25 06:31 수정 2021.12.25 06:31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이낙연, 연초 '사면' 꺼내들다가 역풍

黨靑 교감 모양새 안 갖추기로 한듯

사면, 문대통령 개인 결단으로 정리

이재명 "존중" 입장으로 리스크 회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월초 서울성모병원에서 서울구치소로 복귀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선을 불과 75일 앞두고 현 정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갑작스런 사면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포함한 다각도의 고려가 선행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입장에서는 득(得)을 노리기보다는 실(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입장에서는 사면된 박 전 대통령과의 접점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부담을 안게 됐지만, 박 전 대통령도 예상을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는 상황인 만큼 대선 판도를 뒤흔드는 돌발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법무부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유영하 변호사조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몰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사면이 단행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선거 관련 고려는 일체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대선을 75일 남겨둔 이 시점에 박 전 대통령 사면과 같은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정무적 셈법을 선행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설명을 믿는 정치권 관계자는 거의 없다.


이번 사면은 외견상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전에 만나 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민주당은 강하게 부인했다.


민주당 조승래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송영길 대표는 (지난 8일) 인대 파열 부상 이후 사면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와 면담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며 "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고 전혀 교감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올해초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가 '사면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역풍에 곤욕을 치렀던 점을 고려하면, 사면 직전에 급하게 의견을 교환하기보다도 오히려 평소에 지속적인 교감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특히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TK(대구·경북)에 연고가 있는 이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그림은 동진(東進) 전략의 측면에서 충분히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카드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명 후보는 TK 방문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과 평가를 논란 속에서도 강행했다"며 "선거에만 득이 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건의인들 가능성까지 배제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결국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득보다 실이 많은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감조차 부인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선택된 포지션으로 보인다. 철저히 문 대통령 개인 차원에서의 결단으로 해서,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따른 실망 여론은 문 대통령이 끌어안고,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하고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앞서 이낙연 전 대표도 올해초 '사면 건의' 카드를 꺼내기 전에 교감을 먼저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역풍에 따른 덤터기는 보호돼야할 대권주자가 오롯이 홀로 뒤집어썼다. 이같은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행착오의 반복을 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파괴력 높은 정치적 결정 왜 지금…"
큰 카드 작게 쓴 배경엔 朴 건강 고려?
'옥중 유고' 사태 땐 파장 측정 불가능
사면으로 대선 변수 통제·관리 나선듯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난 11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을 방문해 참배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처럼 득(得)보다 실(失)을 피하는 방향으로 집권 세력의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면, 큰 카드를 작게 썼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이날의 사면 단행을 가리켜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며 "대선후보들의 정책 및 각종 의혹 검증을 압도하는 파괴력 높은 '정치적 결정'을 왜 지금 시점에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임기 5년 내내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만지작거리고만 있던 카드가 의문스런 시기에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면, 그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갑작스런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을 고려했다는 설명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제 배경 중의 하나일 수 있다"면서도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건강 문제만 감안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는 게 아니라, 역으로 건강 문제로 인한 정치적 파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고 추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해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실제로 건강 악화로 인해 지난달 22일부터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입원이다.


공식적으로는 수감 상태인 박 전 대통령이 옥중 유고(有故)라도 당한다면 그 정치적 파장은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한 대선캠프 관계자는 "옥중 유고 사태가 대선에 미칠 여파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라며 "사면이 가을바람이라면 유고는 태풍"이라고 비유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위중하다는 전제 아래서라면 대선 관리의 리스크는 '사면된 박 전 대통령' 보다 '사면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 쪽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사전 조짐이 없던 전격적인 사면 단행의 배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이 알려진 것보다도 좋지 않은 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면 단행은 대선 정국에 돌발 변수를 던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변수를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읽힌다는 분석이다.


"병원 있는 동안 정치인 만나지 않아"
작년 총선 때보다 朴 입장 늦어질 수도
윤석열, 朴 접촉해야할 부담 있지만…
"朴도 정권교체 외 다른 입장 못 취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 9월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영정에 분향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날 사면 단행 직후 발표한 메시지에서 문 대통령과 자신의 지지층 쌍방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한 유영하 변호사는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줘 감사하다"며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도 사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박 전 대통령은) 당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것"이라며 "병원에 있는 동안 정치인을 비롯해 어떤 분도 만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상극 관계인 문 대통령과 자신의 지지층에 동시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대권주자를 포함한 정치인을 당분간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에서는 변수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키워가면서 대선 정국의 흐름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을 빠르게 밝혀야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총선 전에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옥중서신을 전격 공개한 날짜는 3월 4일이었다. 4·15 총선 42일 전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나마 그 때는 유 변호사 본인의 공천 문제가 얽혀 있어 이르게 (입장이) 나온 편"이라며 "대선 정국에서의 영향력 극대화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번에는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바라봤다.


문제는 운신의 폭이다. 정치적으로 예상 가능한 움직임은 상수(常數)일 뿐, 변수(變數)가 아니다. 변수는 완전히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일 때 파괴력이 커진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예상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현 정권 하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낼 때 박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를 하지 않았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황교안 전 대표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허리가 아픈 박 전 대통령이 원한 책걸상 반입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시비에 휩싸인 것과 유사한 부담에 직면해 있다.


윤 후보는 이날 박 전 대통령 사면 단행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형집행정지는) 내가 불허한 게 아니라 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도록 돼 있다"며 "위원회가 의사들의 형집행정지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따른 것"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이러한 논란을 안고 있는 윤석열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호전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면 자신도 병문안 및 접견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 때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를 쉽게는 만나주지 않는 방식으로 애를 태우면서 위상 극대화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결국 윤 후보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은 정권교체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세력과 겹쳐진다"며 "이들 대부분이 이미 윤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윤 후보에게 등을 돌린다면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둘 다 정치적으로 죽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서도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른다는 여러 친박계 신당들이 출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을 통해 "거대 야당의 이합집산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힘을 실었다.


대선 직전에도 결국 박 전 대통령이 이와 같은 결단을 하지 않겠느냐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대선 정국에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예상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판도 자체를 뒤흔드는 파괴력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아주 예상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일 수가 없어 대선 정국에서 결정적 변수로 기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이) 대선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정권교체 외에 다른 입장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위해 뛰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방해가 된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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