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여야 대선 후보
수십~수백조원 규모 재정 공약
재원 마련 방안 부실…표만 쫓아
내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후보들이 막대한 규모의 재정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도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서는 상황에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으로 재정 위기를 가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걸고 있다. 이 후보는 임기 내 청년에게 연간 200만원, 전 국민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난 7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 100만원(4인 가구 400만원) 이상을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며 “임기 개시 이듬해인 2023년부터 25만원씩 1회로 시작, 임기 내에 최소 4회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여당과 함께 전(全) 국민 재난지원금(방역지원금) 지급도 추진 중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1인당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100만원은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48~50만원 지급됐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면에서 최소한 30만~50만원 정도는 더 지급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역화폐 예산도 대폭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지난 15일 지역화폐·골목상권 살리기 운동본부 농성 현장을 방문해 “지역화폐 예산을 작년 액수로 복귀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인 30조원으로 늘려주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지역화폐 사업 예산을 21조원에서 6조원으로 축소하자 이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이 후보에 맞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소상공인 손실보상으로 50조원 투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자영업자 손실보상과 관련해 “새 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정부의 영업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원칙적으로 전액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후보가 주장하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찔끔찔끔 지원은 안 된다”며 “정부의 영업시간 및 인원 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원칙적으로 전액 보상하겠다”고 강조했다.
종합부동산세 폐지도 윤 후보 공약 중 하나다. 윤 후보는 지난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통령이 되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거나 1주택자에 대해서는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1세대 1주택자의 재산세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고 2주택 이상 보유자는 양도소득세를 일시 감면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선 이어 지방선거까지 정치권 선심성 공약 계속될 듯
여야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적게는 수십조원 많게는 수백조원에 달하는 예산이 요구된다. 이 후보의 기본소득 경우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5년 동안 252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1인당 25만원씩 지급할 경우 13조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역화폐 예산 30조원을 추가하면 현금성 예산 지원에만 43조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윤 후보도 비슷하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예산 50조원은 우리나라 내년 전체 예산의 8%에 해당하는 돈이다. 종부세 경우 올해 5조1138억원을 거둬들였는데 이를 폐지하면 그만큼 재정에 빈자리가 생긴다. 특히 종부세는 전액 지방자치단체에 배분되는 재정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기획재정부는 세수 추계 예측을 잘못해 정치권의 재정 투입 요구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7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며 올해 국세 수입을 본예산(282조7000억원) 대비 31조5000억원 늘어난 314조3000억원으로 추계했다. 기재부는 초과 세수를 활용해 국민 약 88%에 1인당 25만원의 상생 국민지원금과 상생 소비지원금(신용카드 캐시백) 사업 등을 추진했다.
그런데 세입 경정 이후에도 경기 회복과 자산시장 호조가 이어지며 올해 세수는 2차 추경 당시 예상치를 19조원 웃도는 333조3000억원까지 늘어나게 됐다. 추경에 사용하기로 한 재원 외에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 초과 세수가 20조원 가까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50조원 넘는 추가세수를 세입예산에 잡지 못한 건 재정 당국의 심각한 직무 유기를 넘어선 책무 유기”라며 “기재부가 이렇게 많은 추가세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그 예산을 국민께 돌려드리지 못하는 것은 추궁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나아가 기재부가 정치권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대하려고 의도적으로 세수 추계를 낮게 잡은 것 아니냐며 국정조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이 경쟁하듯 재정 투입 공약을 내놓자 전문가들은 나라 살림은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후보들이 내놓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성이 떨어져 실현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년에는 3월 대선에 이어 6월에 지방선거까지 예정돼 정치권의 ‘돈 잔치’는 갈수록 심해질 우려가 크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특임교수는 “진보·보수 정당이 각각 정치철학에 따른 세금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기보다는 진영 논리에 갇혀 표 계산만 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행태”라며 “임기응변식으로 표심을 건드리며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큰 틀의 조세제도 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백신 치료제 공급과 맞물려 대부분 국가가 재정 정상화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경기 흐름에 역행하는 선거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기의 재정③] 빚 느는 데 갚을 능력은 줄어…혁신이 ‘답’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