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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버스'가 보여준 일상의 온도 [D:쇼트 시네마(74)]


입력 2024.05.01 11:30 수정 2024.05.01 11:3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조범식·류진아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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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최 기사(손성찬 분)는 오늘도 밝은 미소로 버스 손님들을 맞이한다. 손님과 얼굴 붉힐 일이 생겨도 인자한 미소와 센스 있는 말 한 마디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어느 날 최 기사는 딸 수진(유혜인 분)을 태우고 버스를 운전하다 어린 딸과 있는 임산부를 태운다.


수진은 앉아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산부와 어린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어린 아이가 앉을 자리는 생겼지만 임산부가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최 기사는 신호를 받는 사이, 손님들을 향해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줄 수 있는 손님을 찾지만 아무도 임산부와 최기사의 말에 관심이 없다.


최 기사는 자고 있던 대학생(최영익 분)을 깨운다. 평소 손님들을 유심히 살피며 운전했던 최 기사는 이 학생이 곧 내려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학생은 자느라 최 기사의 말을 듣지 못했던 상태로, 기꺼이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최 기사는 그런 학생과 딸이 기특하다. 다음에 버스 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자신의 딸과 만나보는 것은 어떠냐고 너스레를 떨어 버스 안을 즐겁게 만든다.


목요일, 박 기사(이민섭 분)는 최 기사에게 자신 대신 하루만 더 운행해 줄 것을 부탁한다. 박 기사는 자신의 버스에 몰래 타 매일 버스 창문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는 꼬마(강민준 분)를 만나러 가야 한다.


박 기사 만나러 꼬마는 뒷문으로 버스에 올라 운전하느라 집중한 박 기사의 눈을 피해 그림을 그려온 불청객이다. 박 기사가 말려도 소용 없다. 하루 운행을 마친 박 기사는 꼬마가 창문에 그려놓은 고래를 비롯한 물고기들을 지워야 숙제까지 안게 됐다.


평소와 같이 꼬마가 그림을 그리고 급하게 내리던 찰나, 크레파스를 버스에 놓고 내렸다. 그런데 다음 날 부터 어찌 된 일인지 꼬마가 보이지 않는다. 박 기사는 크레파스에 붙어있는 병원의 이름을 찾아 방문한다. 사실 꼬마는 병을 앓고 있었고 꼬마의 아버지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바닷가에서 물질을 한다. 꼬마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박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 창문에 바다 생물들을 그려왔던 것이다.


박 기사는 꼬마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하고 목요일 병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버스의 모든 창문에 그림을 그려놓는다. 바닷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에 꼬마는 기운을 찾고 미소를 짓는다.


누구나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여름 버스'는 따뜻한 마음을 데운다. 손님들에게 먼저 인사하며 인자하게 살피는 기사들의 모습에게 사람 냄새가 난다.


일상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풍경을 옮겨놓은 모습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사실 버스 기사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거나 인연을 맺는 모습은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 이에 영화의 에피소드가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살가운 대화 없이도 매일같이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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