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유관기관 수장에 퇴직관료 및 정치인 출신 인사 속속 안착
"외풍 막을 것" vs "관치·대정부 로비에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
2020년 연말 금융권이 ‘관피아’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관피아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관료 출신 인사가 퇴직 후 주요기관 수장직을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범죄조직을 의미하는 ‘마피아’가 풍기는 뉘앙스만큼이나 ‘O피아’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금융권 내 ‘관피아’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최근 임기만료가 도래한 금융유관기관 요직이 줄줄이 관료나 정치인 등으로 채워지고 있어서다. 퇴임 한 달여 만에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행시 33회), 한국증권금융·거래소를 거쳐 손해보험협회장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한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행시 27회), 3선 의원 출신으로 9일 취임하는 정희수 신임 생명보험협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인 금융유관기관들도 그간의 관례에 비추어 ‘어차피 관료 출신이 올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지난 4일 공모를 마감한 주택금융공사 사장직에도 금융관료 출신인 최준우 전 증선위 상임위원(행시 35회)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인 NH농협금융지주 회장직 후보군에도 전직 관료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관피아’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시각은 수장의 역할을 어느 쪽으로 두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특히 업계를 대변하는 금융협회의 경우 이른바 ‘말빨이 먹히는’ 실세 관료나 정치인 출신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산적해 있는 현안과 규제 완화, 정치적 외풍 등에 있어 이들의 인맥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여기에 관료 출신의 경우 금융정책 등에 대한 높은 전문성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관피아’나 ‘정피아’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채용절차에서부터 전문성에 기반한 적임자를 찾아나서기보다는 출신에 따라 일찌감치 당락이 가려지면서 금융기관 수장직이 정부의 ‘보은인사’ 또는 ‘자리 나눠먹기’화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반 금융권 채용이 배경보다 공정성을 중시하며 블라인드로 진행되는 것과는 다소 상반되는 기조다.
이같은 내려꽂기식 관행이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관피아들이 자리를 챙기는 대신 정부당국을 상대로 로비스트화되는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역시 ‘말 잘 듣는’ 관료 출신 인사를 선임함으로써 정부가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관치금융’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최근 6년간 200여명이 넘는 경제관료가 퇴직 후 금융기관에 취업했다”면서 “이처럼 관피아 출신들이 금융기관 낙하산으로 포진하면서 금융개혁이 방해받고 있다”며 문제가 발생해도 적당히 넘어가는 ‘끼리끼리 관행’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한편 ‘관피아’ 부작용의 대표적 사례로는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꼽힌다. 당시 해수부 소속 공무원의 항만업계 재취업이 참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자 국회는 퇴직한 관료 출신 인사들이 금융권 등 기관 주요보직에 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는 ‘관피아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사실상 별 효과가 없는 상황.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면서 강행한 '관피아'가 우리 금융산업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 원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