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수입유산스 올해만 3조5000억↑
환율 치솟아 상환 부담 확대 불가피
정국 불안에 원·달러 1500원 관측도
국내 은행들이 기업들에게 수입용 대금 등 단기 무역 자금으로 빌려준 돈이 올해 들어서만 3조5000억원 넘게 불어나면서 26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대출이 외화로 이뤄지는 특성 상 지금처럼 환율이 치솟으면, 기업으로서는 달러로 대출금을 갚는 과정에서 환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기업들이 받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이 실행한 내국수입유산스 잔액은 총 25조875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5.7%(3조5066억원) 늘었다.
유산스는 은행이 수입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실행하는 일종의 단기 무역 대출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들이기 위해 달러가 필요한 기업들이 외화 결제 수단으로 이용한다. 은행이 수입 결제 대금을 먼저 지급하면, 물건을 받은 기업이 계약 만기일에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에서 나간 내국수입유산스가 4조490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2.1%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하나은행 역시 4조1462억원으로, 신한은행은 3조4551억원으로 각각 13.5%와 11.0%씩 해당 금액이 늘었다.
이어 KDB산업은행이 3조1721억원으로, IBK기업은행인 3조784억원으로 각각 3.6%와 12.0%씩 증가하며 내국수입유산스가 3조원을 웃돌았다. 우리은행도 3조681억원으로, NH농협은행은 2조5923억원으로 각각 14.6%와 11.6%씩 늘며 내국수입유산스 규모가 큰 편이었다.
유산스를 활용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대출 금리만큼이나 환율이 중요하다. 통상 유산스는 달러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은행으로부터 이를 실행 받고 상환하는 기간 동안 환율이 뛰어버리면 사실상 원화로 외화를 갚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환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와중 환율은 천정부지로 급등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대통령 탄핵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어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10원부터 1430원을 오르내리며 널뛰기 장세를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에는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앞으로 환율 상승세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정국 혼란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볼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정치적인 이슈가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한다면 원·달러 환율은 1500원까지 볼 수도 있다"며 "당국이 개입 강도를 높인다고 해서 상황이 진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산스 어음 방식으로 원자재를 사들이는 기업은 환율 급등에 따른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며 "특히 환헤지 여력이 비교적 적은 중견, 중소기업들로서는 리스크에 직접 노출될 염려가 크다"고 말했다.